2,73 €
일제 강점기 말기 친일 소설을 발표하는 등의 행위로 친일 문학 부문에 선정된 문학인이었으며 반어적이고 풍자적인 회화 기법의 작가 채만식의 소설과 수필 등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실속 전자책이다.
Das E-Book können Sie in Legimi-Apps oder einer beliebigen App lesen, die das folgende Format unterstützen:
Seitenzahl: 1410
Veröffentlichungsjahr: 2015
Book give you a better perspective
【 C 】ont entsㆍㆍㆍ
▒저자소개 - 채만식(蔡萬植)
▒소설
▒수필
▥
세길로
(1924년)
세길로(1924년)
♥♥♥♥♥♥♥♥♥♥♥♥♥♥♥♥♥♥♥♥♥♥♥♥♥♥♥♥♥♥♥♥♥♥
나는 자리 넓은 곳을 찾느라고 맨 꽁무니 찻간에 올랐다.
서로 먼저 오르려고 밀치고 달치며 정신없이 서두는 사람들 “리리…… 리리…… 고훙깐데이샤…… 군상젠슈호 멘노리까에……” 하며 입에다 나발통을 대고 악을 쓰며 외치는 역부들의 떠드는 소리…… 플랫포옴 앞에 그득히 들어선 검은 기차 옆에 모여서서 긴장이 되어 훤화와 혼잡을 이루는 광경은, 차로부터 척척 내리는 사람들의 범연한 시선과 가벼운 모양이며 차창으로부터 무심히 내어다보는 사람들의 고요하고 한가한 얼굴과 알맞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차 꽁무니로 해서 차 안에 막 들어서자 바로 문간에서 멀지 아니한 곳에 보얗게 선선하게 차린 여학생 하나에 선뜻 눈이 띄었다.
그가 썩 미인인 것도 아니요, 또 여학생이 아닌 다른 여자가 그 찻간에 타지 아니한 것도 아니었지만, ‘여학생’ 하면 웬일인지 시선과 귀가 이상하여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더우기 시골─이라 그런지 나에게 역시 그가 산뜻하게 눈에 띄었고, 또 그 찻간에 탄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호기심에서 우러나지 아니한다 할 수 없었다.
그 여학생은 얼굴이 넓고 두툼하고 몸과 수족도 큼직하고 마침 바깥을 내어다보며 무심코 “어디야?” 하는 그 말소리까지가 살이 진 듯이 두두룩해서 한번 보기에 어쩐지 육감적(肉感的) 기분이 그의 주위에 싸여 떠도는 듯하였다.
그는 적삼도 희고 치마도 희고 속옷도 희고 무릎까지 올라온 양말도 희고 분 바른 얼굴도 희고, 다만 뾰족한 뒷굽 높은 구두와 맵시 있게 늘쩡늘쩡 땋아내린 탐스러운 머리채만이 새까맸었다.
말하자면 시골 사람 말짝으로 ‘부자집 맏며느리감’이었었다. 그는 차의 진행하는 앞쪽으로 향하여 바른편 줄에 앉았고, 그의 앞에는 나이 오십쯤 되어 보이는 마나님─나는 그 마나님이 그 여학생의 어머니인 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 하나가 그와 마주 향하여 앉았었다.
그리고 그 마나님의 바로 등 뒤에는 전문학교 학생인지 어느 강습소 학생인지 교복을 입지 아니하였으므로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학생은 학생인 듯싶은 ─ 얄밉고 약게 생긴 얼굴 표정의 소유자인 나이 스물네댓 되어 보이는 사내 하나가 얼른 보기에도 좀 ‘젠체’ 하는 기분이 있어 보이게 하고 앉았었다.
그러고 그의 앞자리는 비었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 사나이가 그 여학생과 친척 관계가 되거나 흑 그렇지 않더라도 동향 사람으로서 서울까지 동행하느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사나이의 그 여학생에게로 향하는 안정치 못한 교활한 시선으로 보아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인 것을 바로 알았다. 나는 그 사내의 앞 빈 자리로 가서 짐을 선반에 얹고 잠깐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 웃저고리도 벗고 넥타이도 풀고 하면서 그 여학생을 한번 정면으로 치어다보았다.
그는 미리 나를 치어다보고 있었든지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무류하여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하며 속맘으로 ‘왜 바라볼까?’ 하고 생각할 때에 ‘사람이 사람을 보는데 의미는 무슨 의미가 있어’라고 해석하였으나 나는 그 해석에 내 스스로가 불만족이었고 도리어 그에게 치어다보인 것이 무조건으로 기뻤다.
그러자 그 마나님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그 사내도, 또 건너편 줄에 앉은 중학생도 어느 시골 신사도 나를 바라보는 것을 알았다.
나는 좀 불안은 하였으나 승리자의 심리(心理) 같은 기쁨을 느꼈다.
아직도 차 탈 사람은 하나씩 둘씩 올라와 눈을 내두르며 앉을 자리를 찾고 플랫포옴은 여전히 요란하였다.
벤또 장사, 차장사, 무슨 장사 해서 모두 가까이 와 차창으로 대고 바쁘게 외웠다.
그 여학생은 그 마나님과 무어라고 몇 마디 소곤거리더니 돈지갑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 사나이도 그를 따라 벌떡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조금 있다가 그 여학생은 벤또 둘을 사들고 들어오고, 그 사내는 아무것도 사지 아니하고 도로 들어와 곁눈으로 그 여학생을 흘끔흘끔 보며 제자리에 가 앉았다.
찌르르하고 발차 종소리가 나며 호각소리가 감감히 들리더니 우렁찬 기적소리와 아울러 피피 소리를 연해 내며 차는 슬그머니 움직였다.
찌걱찌걱하며 교차된 여러 선을 벗어나가는 기차는 귀치 아니한 것을 모두 털어버린 듯이 속력을 놓아 선선하게 달려갔다.
외계(外界)는 끊이지 않고 변하며 차소리가 요란하여 정신이 암암한 반대로 여전히 한가한 듯이 낯에 익은 차 안의 안온한 기분에 나는 말 할 수 없는 친함을 느꼈다.
그 여학생은 그때야 산 벤또를 풀어놓고 그 마나님과 함께 입을 옴죽옴죽하며 먹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의 옴죽옴죽 옴죽거리는 입이 퍽도 귀여워서 한참이나 건너다 보고 있다가 마주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마주쳐 고개를 돌렸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보는 체하고 있으면서도 그가 지금 내 옆얼굴을 바라보려니 생각하니 마음에 썩 기뻤다.
그러자 내가 앉은 편으로 따가운 햇볕이 쪼이고 연기와 석탄가루가 몹시 날려 들어와서 좀 섭섭은 하였으나―그래서 그 자리에다 모자를 벗어놓고─ 저편 그늘지고 연기 들어오지 아니하는 줄로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곳에서 나는 그 여학생을 바로 측면으로 볼 수가 있었다. 얼마 아니하여 차는 또 정거장에 머물렀다.
차가 우뚝 서고 차바퀴가 뚝 그치자 안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한가한 얼굴로 조용히 이야기하는 소리가 한꺼번에 고요히 일어났다.
몇 사람은 내리고 몇 사람은 타고 하느라고 잠깐 동안 동요가 생겼으나 그것도 그 차 안의 낯익은 기분과 지질한 공기에 동화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사내는 이편 줄로 건너와서 어느 중학생─그는 그와 동행하는 듯 한데 내 앞에서 세넷 의자를 건너 나와 마주 보이게 향하고 앉았었다. ─ 옆으로 가 앉으며 곁눈으로 그 여학생을 흘끔 건너다보았다.
그는 잠깐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 바로 그 뒤에 앉은 어느 시골 신사―역시 그와 동행하는 듯싶은─에게 연필을 빌리고 그 중학생에게서는 종이를 빌어가지고 연필 끝에 침을 묻혀가며 무엇인지를 잠자코 쓰고 있었다.
나는 저 여학생한테 편지를 쓰지? …… 짐작하고 일부러 일어서서 지나가는 체하고 그 쓰는 것을 슬쩍 보았다.
나는 내 스스로 계면쩍은 미소를 하고 도로 내 자리에 앉았다.
그는 7.5 0.5 1.5 0.3 1.80.70.3하고 무슨 가법(加法) 운산을 죽 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는 아마 오면서 쓴 돈을 계산하여 보는 것 같았다. ─ 그러나 나는 그 순간에 어쩐지 마음이 약간 앙앙하고 불쾌하였다.
그는 쓰던 종이를 싹싹 비벼 내버리고 담배를 꺼내어 붙여 물고 폭폭 피웠다.
그 중학생도 담배를 피웠다.
그 사내는 그 중학생의 등을 턱 치며 허겁스러운 능라주(綾羅州) 사투리로
“음마, 중학생이 담배 막 묵네요……”라고 누구더러 들으라는 듯이 일부러 소리를 높여 말을 하고, 그 중학생을 미소하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곁눈으로는 흘금흘금 그 여학생을 건너다보았다.
그 중학생도 그 여학생을 곁눈으로 한번 건너다보고 나서 그 사내를 치어다보며
“체, 중학언 사람 아니당가……”
하고 불복한다는 듯이 입술을 뛰 내밀고 경멸하듯이 미소하였다.
그들은 한참 동안 무엇이라고 떠들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의 시선은 끊이지 않고 동요하였다.
그 사내는 다시 일어서 그 여학생 옆으로 해서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곁눈질을 여전히 슬슬 하며 그 중학생에게 “이 근방도 농사가 말이 아니끼……” 하고 그 옆에 가 앉았다.
나는 그의 하는 짓을 모두 수탉이 암탉을 대할 때 그것처럼 보았다.
그 여학생은 물론 가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것을 기대하고 다시 마음의 열락을 ─ 더 나아가서는 직접의 교제까지도 기대하고 그러느니라 나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여학생이 그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는 다르게 나에게는 보였다.
그 여학생은 가지고 온 수박 한 통을 윗봉지를 뚝 따놓고 그 마나님과 둘이서 먹기 시작하였다.
그 수박이야말로 먹음직스러웠다.
늑신 익어 단물이 솟는 듯이 사근사근하여 보이는 새빨간 속에 까만 씨가 홱홱 돌아 소복소복 박힌 것이 그야말로 침이 넘어갈 듯하였다.
사실 나는─ 그다지 먹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 무의식중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 멋들어지게 익어 설설 녹는 듯한 붉은 살을 칼로 한 점 한 점 도려내어 입에 넣고는 입을 오물뜨리고 새까만 씨만 쏙쏙 빼놓는 그의 입이야말로 썩 귀엽게 보였다.
그 사내는 벌린 입을 다물 줄도 모르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벌떡 일어서 먼저 앉았던 자리로 가더니 차창을 열어놓고 몸을 반이나 밖으로 내어보내고 창가를 불렀다.
질항아리 깨뜨리는 듯한 목쉰 소리가 차소리에 섞여 감감히 들렸다.
어느 틈에 기차는 강경역에 닿았다.
오르고 내리는 속이 요란하였다.
마침 어느 나이 오십은 먹어 보이는 ─ 아무리 보아도 염집 부인 같지는 아니하나 의복은 썩 깨끔하게 입고 금가락지금비녀도 찌른 부인 하나가 올라와 그 마나님 옆에 앉았다. 빈 자리를 두고 굳이 좁게 앉는 것을 보면 말동무를 찾는 듯하였다.
과연 그 부인은 가져온 담뱃대에 수건에 싼 담배를 넣어 불을 붙이면서 어쩐지 영남 사투리로 구수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고 세상이라고 원 맘을 놓고 살 수가 있어야지……”
하고 말대껄을 청하는 듯이 그 마나님을 바라보았다.
권태에 싸인 근방 사람들의 시선은 새로운 자극을 탐내는 듯이 모두 그 부인에게로 모였다.
그 마나님은 “왜요? ……”라고 간단히 말대껄을 하였다. (23행 삭제─원주) 하고 그래도 곁눈으로는 그 여학생을 바라보며 코를 벌씸하였다.
그 마나님은 그의 하는 말에 감동이 되어 그를 장하게 보았던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어디까지 가시요?”
하고 물었다.
그 사내는 성났던 얼굴을 갑자기 고쳐 공순한 빛을 띠고 오히려 황송한 듯이
“예…… 저는 서울까지 갑니다…… 어디까지 가서요?”
하고 은근히 대답하고 묻기까지 하였다.
“나두 서울까지 가오…… 태전서 갈어타지요? ……”
“예…… 대전(그는 대전이라고 하였다)서 갈어타십니다…… 인제 이담이 논산, 연산, 두계, 가수원.”
하고 손가락을 꼽아 세다가
“인제 넷밖에 안 남었읍니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의 빛이 완연히 떠올랐었다.
그의 욕망과 기대에 싸인 시선은 더욱 자주 그 여학생에게로 향하였다.
그 여학생도 호기심을 가지고 가끔 그를 바라보았다.
기차가 대전 정거장에 닿을 때가 되어 나는 먼저 앉았던 자리로 가서 짐을 챙겼다.
그 여학생은 나를 또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고 나서 그대로 마주 바라보지 못한 것이 후회였었다.
그러나 어쩐지 그러할 때마다 그와 마주 바라보기가 계면쩍어 할 수 없이 내가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었다.
돌리고 나서 생각하면 ‘마주 얼마든지 바라보았더면?’ 하는 궁금한 생각과 후회가 날 뿐이었었다.
차가 대전 정거장에서 자그마나님에게 부탁을 받은 그 사내는 아까보를 불러주기와 짐 날라주기에 매우 분주한 모양이었었다.
그 마나님 즉 그 여학생의 ─ 급행권도 사주고 경부선에 올라서는 자리도 골라 잡아주는 그를 나는 더욱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그들의 자리를 잡아주고 자기 자리도 그 가까운 곳으로 옮겨갔다.
나는 그네와 딴 찻간에 탔었다.
내 옆에 빈 자리가 많은 것을 나는 그네를 위하여 퍽 안타까왔다.
나는 그네가 탄 찻간을 찾아가서 슬쩍 보았다.
그 사내는 잡아놓은 자기 자리는 비워놓고 그 마나님 옆으로 가까이 가서 친밀스러운 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마주 보다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내 마음에는 그 시선이 퍽 차진 것 같고 도리어 그 사내에게로 향하는 시선이 따스한 듯하였다.
그 사내도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과 얼굴에는 자기의 자랑과 나를 조롱하는 듯한 기운이 보이는 듯하였다.
나는 퍽 섭섭도 하고 노엽기도 하여 맥없이 내 자리로 돌아갔다.
내 자리로 돌아가서 그제야 꿈에서나 깬 듯이 얼음보다 찬 미소를 띠었다.
나는 어슬어슬 저물어가는 저녁해에 남대문정거장의 혼잡한 개찰구를 빠져나와 조용한 구석에 가 서서 그 여학생과 사내의 가는 길을 보았다.
그 여학생은 그 사내보다 먼저 나와 그 마나님과 함께 인력거를 타고 남대문 안으로 향하여 들어갔다.
급히 나오던 그 사내는 인력거 뒤만 한참이나 바라보고 섰다가 그 중학생과 함께 중국 사람 마차를 타고 서대문 전차길 난 곳으로 갔다.
나는 혼자 전차를 타고 용산으로 나아갔다.
그 이튿날 나는 거리에서 그 사내를 또 만났다.
나는 입안에 든 미소로 그에게 전암시(全暗示)를 주었다.
그 역시 빙그레 웃고 지나갔다.
▥
레디메이드 인생
(1933년)
레디메이드 인생(1933년)
♥♥♥♥♥♥♥♥♥♥♥♥♥♥♥♥♥♥♥♥♥♥♥♥♥♥♥♥♥♥♥♥♥♥
1
"머 어데 빈자리가 있어야지."
K사장은 안락의자에 푹신 파묻힌 몸을 뒤로 벌―떡 젖히며 하품을 하듯이 시원찮게 대답을 한다. 미상불 그는 두 팔을 쭉― 내뻗고 기지개라도 한 번 쓰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 눈치다.
이 K사장과 둥근 탁자를 사이에 두고 공손히 마주 앉아 얼굴에는 '나는 선배인 선생님을 극히 존경하고 앙모합니다' 하는 비굴한 미소를 띠고 있는 구변 없는 구변을 다하여 직업 동냥의 구걸(口乞) 문구를 기다랗게 늘어놓던 P…… P는 그러나 취직운동에 백전백패(百戰百敗)의 노졸(老卒)인지라 K씨의 힘 아니 드는 한마디의 거절에도 새삼스럽게 실망도 아니한다. 대답이 그렇게 나왔으니 이제 더 졸라도 별수가 없는 것이지만 허실삼아 한마디 더 해보는 것이다.
"글쎄올시다, 그러시다면 지금 당장 어떻게 해주십사고 무리하게 조를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면 이 담에 결원이 있다든지 하면 그때는 꼭……."
이렇게 말하고 P는 지금까지 외면하였던 얼굴을 돌리어 K사장을 조심성 있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K사장은 우선 고개를 좌우로 두어 번 흔들고는 여전히 하품 섞인 대답을 한다.
"결원이 그렇게 나나 어데…… 그러고 간혹가다가 결원이 난다더래도 유력한 후보자가 몇십 명씩 밀려 있어서……."
P는 아무 말도 아니 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영영 틀어진 것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일어서는 것밖에는 별수가 없다.
별수가 없이 되었으니 '네 그렇습니까' 하고 선선히 일어서야 할 것이지만 지금까지 은근히 모시고 있던 태도에 비하여 그것이 너무 낯이 간지러운 표변임을 알기 때문에 실망이나 하는 체하고 잠시 더 앉아 있는 것이다.
"거 참 큰일들 났어."
K사장은 P가 낙심해하는 것을 보고 별로 밑천이 들지 아니하는 일이라서 알뜰히 걱정을 나누어 준다.
"저렇게 좋은 청년들이 일거리가 없어서 저렇게들 애를 쓰니."
P는 속으로 코똥을 '흥' 하고 뀌었으나 아무 대답도 아니 하였다. K사장은 P가 이미 더 조르지 아니하리라고 안심한지라 먼저 하품 섞어 '빈자리가 있어야지' 하던 시원찮은 태도는 버리고 그가 늘 흉중에 묻어 두었다가 청년들에게 한바탕씩 해 들려 주는 훈화를 꺼낸다.
"그렇지만 내가 늘 말하는 것인데…… 저렇게 취직만 하려고 애를 쓸 게 아니야. 도회지에서 월급생활을 하려고 할 것만이 아니라 농촌으로 돌아가서……."
"농촌으로 돌아가서 무얼 합니까?"
K는 말 중동을 갈라 불쑥 반문하였다. 그는 기왕 취직운동은 글러진 것이니 속시원하게 시비라도 해보고 싶은 것이다.
"허! 저게 다 모르는 소리야…… 조선은 농업국이요, 농민이 전 인구의 팔 할이나 되니까 조선 문제는 즉 농촌 문제라고 볼 수가 있는데, 아 지금 농촌에서 할 일이 오죽이나 많다구?"
"저는 그 말씀 잘 못 알어듣겠는데요. 저희 같은 사람이 농촌에 가서 할 일이 있을 것 같잖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가령 응…… 저……."
K사장은 응…… 저…… 하고 더듬으면서 끝내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가 구직하러 오는 지식 청년들에게 농촌으로 돌아가 농촌사업을 하라는 것과 (다음에 또 꺼내는 일거리를 만들라는 것은) 결코 현실에서 출발한 이론적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었었다. 그저 지식 계급의 구직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막연히 '농촌으로 돌아가라' '일을 만들어라'고 해왔을 따름이다. 따라서 거기에 대한 구체적 플랜이 있는 것도 아니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 행셋거리로, 또 한편으로는 구직꾼 격퇴의 수단으로 자룡이 헌 창 쓰듯 썼을 뿐이지.
그리하여 그 동안까지는 대개는 그 막연한 설교를 들은 성 만 성하고 물러가는 것이 그들의 행티였었는데 오늘 이 P에게만은 그렇지가 아니하여 불가불 구체적 설명을 해주어야 하게 말머리가 돌아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떠듬떠듬 생각해 가면서 생각나는 대로 주워섬기는 것이다.
"가령 응…… 저…… 문맹퇴치운동도 있지. 농민의 구 할은 언문도 모른단 말이야! 그리고 생활개선운동도 좋고…… 헌신적으로."
"헌신적으로요?"
"그렇지…… 할 테면 헌신적으로 해야지."
"무얼 먹고 헌신적으로 그런 사업을 합니까……? 먹을 것이 있어서 그런 농촌사업이라도 할 신세라면 이렇게 취직을 못 해서 애를 쓰겠습니까?"
"허! 그게 안 된 생각이야…… 자기가 먹고 살 재산이 있으면서 사회를 위해서 일도 아니하고 번들번들 논다는 것은 그것은 타락된 생각이야."
P는 K사장이 억담을 내세우는 것을 보고 속으로 싱그레니 웃었다.
"그렇지만 지금 조선 농촌에서는 문맹퇴치니 생활개선이니 합네 하고 손끝이 하―얀 대학이나 전문학교 졸업생들이 몰려오는 것을 그다지 반겨하기는커녕 머릿살을 앓을 것입니다…… 농민이 우매하다든지 문화가 뒤떨어졌다든지 또 생활이 비참한 것의 근본원인이 기역 니은을 모른다든가 생활개선을 할 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조선의 지식 청년들이 모두 그런 인도주의자가 되어집니까?"
"되면 되지 안 될 건 무어야?"
"그건 인도주의란 그것이 한 개 공상이니까 그렇겠지요."
"허허…… 그러면 P군은 ××주의잔가?"
"되다가 찌부러진 찌스레깁니다. 철저한 ××주의자라면 이렇게 선생님한테 와서 취직운동도 아니 합니다."
"못써! 그렇게 과격한 사상으로 기울어서야 쓰나…… 정 농촌으로 돌아가기가 싫거든 서울서라도 몇 사람 맘 맞는 사람이 모여서 무슨 일을―--- 조선에 신문이 모자라니 신문을 하나 경영하든지 또 조그맣게 하자면 잡지 같은 것도 좋고 또 영리사업도 좋고…… 그러면 취직 운동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졸 줄이야 압니다만 누가 돈을 내놉니까?"
"그거야 성의 있게 하면 자연 돈도 생기는 거지."
P는 엉터리없는 수작을 더 하기가 싫어 웬만큼 말을 끊고 일어섰다.
속에 있는 말을 어느 정도까지 활활 해준 것이 시원은 하나 또 취직이 글렀구나 생각하니 입 안에서 쓴침이 괴어 나온다.
복도에서 편집국장 C를 만났다. P는 C와 자별히 사이가 가까운 터였었다.
"사장 만나러 왔소?"
C가 묻는 것이다.
"아니."
P는 거짓말을 하였다. 그는 지금 K사장을 만나 거절당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쩐지 창피하기도 할 뿐 아니라 또 전부터 C더러 K사장에게 자기의 취직운동을 부탁해 왔던 터인데 직접 이렇게 찾아와서 만났다고 하기가 혐의쩍기도 하여 시치미를 뚝 뗀 것이다.
"아주 단념하오."
C는 자기에게 부탁한 취직운동을 단념하란 말이다. 그러면 벌써 C가 K사장에게 이야기를 하였고 그 결과 일이 틀어진 것을 P는 모르고 와서 헛노릇을 한바탕 한 것이다. P는 먼저 C를 만나 보지 아니하고 K사장을 만난 것을 후회하였다. C는 잠깐 멈췄던 말을 계속한다.
"어제 아침에 사장더러 P군의 사정이 퍽 난처하니 어떻게 생각해 봐 주면 좋겠다고 여러 말을 했다가 코떼었소. 신문사가 구제기관이 아닌데 남의 사정 난처한 것을 어떻게 하라느냐고 그럽디다…… 하기야 그게 옳은 말이지만."
신문사가 구제기관이 아니라고 한다는 그 말이 P의 머리에는 침 끝으로 찌르는 것같이 정신이 들게 울리었다.
"흥! 망할 자식들!"
P는 혼자말로 이렇게 두덜거리며 C와 작별도 아니 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2
P는 광화문 네거리의 기념비각(紀念碑閣) 옆에서 발길을 멈추고 망설였다. 어디로 갈까 하는 것이다.
봄 하늘이 맑게 개었다. 햇볕이 살이 올라 포근히 온몸을 싸고 돈다. 덕석 같은 겨울 외투를 벗어 버리고 말쑥말쑥하게 새로 지은 경쾌한 춘추복의 젊은이들이 봄볕처럼 명랑하게 오고 가고 한다.
멋쟁이로 차린 여자들의 목도리가 나비같이 보드랍게 나부낀다. 그 오동보동한 비단 다리를 바라다보노라니 P는 전에 먹던 치킨커틀릿 생각이 났다.
창을 활활 열어 젖힌 전차 속의 봄 사람들을 보니 P도 전차를 잡아타고 교외나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크림 맛을 못 본 지 몇 달이 된 낡은 구두, 고기작거린 동복 바지, 양편 포켓이 오뉴월 쇠×알같이 축 처진 양복 저고리, 땟국 묻은 와이셔츠와 배배 꼬인 넥타이,
엿장수가 이 전 어치 주마던 낡은 모자, 이렇게 아래로부터 훑어 올려 보며 생각하니 교외의 산보는커녕 얼른 돌아가서 차라리 이불을 뒤쓰고 드러눕고만 싶었다.
마침 기념비각 앞에 자동차 하나가 머무르더니 서양 사람 내외가 내린다. 그들은 사내가 설명을 하고 여자가 듣고 하면서 기념비각을 앞뒤로 구경한다. 여자는 사진까지 찍는다.
대원군이 만일 이 꼴을 본다면…… 이렇게 생각하매 P는 저절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3
대원군은 한말(韓末)의 돈키호테였었다. 그는 바가지를 쓰고 벼락을 막으려 하였다. 바가지는 여지없이 부스러졌다. 역사는 조선이라는 조그마한 땅덩이나마 너무 오래 뒤떨어뜨려 놓지 아니하였다.
갑신정변(甲申政變)에 싹이 트기 시작하여 가지고 일한합방의 급격한 역사 변천을 거쳐 자유주의의 사조는 기미년에 비로소 확실한 걸음을 내어디디었다.
자유주의의 새로운 깃발을 내어걸은 '시민(市民)'의 기세는 등등하였다.
"양반? 흥! 누구는 발이 하나길래 너희만 양발(반)이라느냐?"
"법률의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이다."
"돈…… 돈이 있으면 무어든지 할 수 있다."
신흥 부르주아지는 민주주의의 간판을 이용하여 노동자 농민의 등을 어루만지고 경제적으로 유력한 봉건귀족과 악수를 하는 동시에 지식 계급을 대량으로 주문하였다.
유자천금이 불여교자 일권서(遺子千金 不如敎子 一卷書)라는 봉건시대의 진리가 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아 일단의 더 발전된 얼굴로 민중을 열광시켰다.
"배워라. 글을 배워라……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양반이 되고 잘살 수가 있다."
이러한 정열의 외침이 방방곡곡에서 소스라쳐 일어났다.
신문과 잡지가 붓이 닳도록 향학열을 고취하고 피가 끓는 지사(志士)들이 향촌으로 돌아다니며 삼촌의 혀를 놀려 권학(勸學)을 부르짖었다.
"배워라. 배워야 한다. 상놈도 배우면 양반이 된다."
"가르쳐라. 논밭을 팔고 집을 팔아서라도 가르쳐라. 그나마도 못 하면 고학이라도 해야 한다."
"공자왈 맹자왈은 이미 시대가 늦었다. 상투를 깎고 신학문을 배워라."
"야학을 실시하여라."
재등(齋藤) 총독이 문화정치의 간판을 내어걸고 골골이 학교를 증설하였다. 보통학교의 교장이 감발을 하고 촌으로 돌아다니며 입학을 권유하였다. 생도에게는 월사금을 받기는커녕 교과서와 학용품을 대어 주었다.
민간의 유지는 돈을 걷어 학교를 세웠다. 민립대학도 생기려다가 말았었다. 청년회에서 야학을 설시하였다. 갈돕회가 생겨 갈돕만주 외우는 소리가 서울에 신풍경을 이루었고 일반은 고학생을 존경하였다.
여학생이라는 새 숙어가 생기고 신여성이라는 새 여인이 생겨났다.
이와 같이 조선의 관민이 일치되어 민중의 지식 정도를 높이는 데 진력을 하였다. 즉 그들 관민이 일치하여 계획한 조선의 문화 정도는 급도로 높아 갔다.
그리하여 민중의 지식 보급에 애쓴 보람은 나타났다.
면서기를 공급하고 순사를 공급하고 군청 고원을 공급하고 간이 농업학교 출신의 농사 개량 기수를 공급하였다.
은행원이 생기고 회사 사원이 생겼다. 학교 교원이 생기고 교회의 목사가 생겼다.
신문 기자가 생기고 잡지 기자가 생겼다. 민중의 지식 정도가 높았으니 신문 잡지 독자가 부쩍 늘고 의사와 변호사의 벌이가 윤택하여졌다.
소설가가 원고료를 얻어먹고 미술가가 그림을 팔아먹고 음악가가 광대의 천호(賤號)에서 벗어났다.
인쇄소와 책장사가 세월을 만나고 양복점 구둣방이 늘비하여졌다.
연애결혼에 목사님의 부수입이 생기고 문화주택을 짓느라고 청부업자가 부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부르주아지는 '가보'를 잡고, 공부한 일부의 지식꾼은 진주(다섯 끗)를 잡았다.
그러나 노동자와 농민은 무대를 잡았다. 그들에게는 조선의 문화의 향상이나 민족적 발전이나가 도리어 무거운 짐을 지어 주었을지언정 덜어 주지는 아니하였다. 그들은 배〔梨〕주고 속 얻어먹은 셈이다.
……(원문 20여 자 탈락)……
인텔리…… 인텔리 중에도 아무런 손끝의 기술이 없이 대학이나 전문학교의 졸업증서 한 장을, 또는 그 조그마한 보통 상식을 가진 직업 없는 인텔리…… 해마다 천여 명씩 늘어 가는 인텔리…… 뱀을 본 것은 이들 인텔리다.
부르주아지의 모든 기관이 포화상태가 되어 더 수요가 아니 되니 그들은 결국 꼬임을 받아 나무에 올라갔다가 흔들리는 셈이다. 개밥의 도토리다.
인텔리가 아니 되었으면 차라리 ……(원문 7∼8자 탈락)……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텔리인지라 그 속에는 들어갔다가도 도로 달아나오는 것이 구십구 퍼센트다. 그 나머지는 모두 어깨가 축 처진 무직 인텔리요, 무기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다.
4
"제―길!"
P는 혼자 두덜거리며 지금까지 서 있던 기념비각 옆을 떠났다.
……(원문 80여 자 탈락)……
P는 자기 자신이고 세상의 모든 일이고 모두 짜증이 나고 원수스러웠다.
광화문 큰거리를 총독부 쪽으로 어슬어슬 걸어가노라니 그의 그림자가 짤막하게 앞에 누워 간다. P는 그 자기 그림자를 콱 밟고 싶었다. 그러나 발을 내어디디면 그림자도 그만큼 앞으로 더 나가곤 한다. 이 그림자와 자기 자신에서, 그리고 그림자를 밟으려는 자기 자신과 앞으로 달아나는 그림자에서 P는 자기의 이중인격의 모순상(相)을 발견하였다.
동십자각 옆에까지 온 P는 그 건너편 담배 가게 앞으로 갔다.
"담배 한 갑 주시오."
하고 돈을 꺼내려니까 담배 가게 주인이,
"네, 마콥니까?"
묻는다.
P는 담배 가게 주인을 한번 거듭떠 보고 다시 자기의 행색을 내려 훑어보다가 심술이 버쩍 났다. 그래서 잔돈으로 꺼내려는 것을 일부러 일 원짜리로 꺼내려는데 담배 가게 주인은 벌써 마코 한 갑 위에다 성냥을 받쳐 내어민다.
"해태 주어요."
P는 돈을 들이밀면서 볼먹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담배 가게 주인은 그저 무신경하게 '네―' 하고는 마코를 해태로 바꾸어 주고 팔십오 전을 거슬러 준다.
P는 저편이 무렴해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욱 얄미웠다.
그는 해태 한 개를 꺼내어 붙여 물고 다시 전찻길을 건너 개천가로 해서 올라갔다. 이제는 포켓 속에 남은 것이 꼭 삼 원하고 동전 몇 푼이다. 엊그제 겨울 외투를 사 원에 잡혀서 생긴 것이다.
방세와 전깃불값이 두 달 치나 밀렸다. 삼 원은 방세 한 달 치를 주고 일 원에서 전등삯 한 달 치를 주고도 싶었으나 그러고 나면 그 나머지로 설렁탕이나 호떡을 사먹어도 하루밖에는 못 지낸다. 그래 그대로 넣어 두고 한 이틀 지내는 동안에 일 원이 거진 달아났던 판인데 공연한 객기를 부리느라고 당치도 아니한 해태를 샀기 때문에 이제는 일 원 돈은 완전히 달아나고 삼 원만 남은 것이다.
P는 포켓 속에 손을 넣고 잔돈과 지폐를 섞어 삼 원 남은 돈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 왼편 손으로는 손가락을 꼽아 가며 삼 원을 곱쟁이 쳐보았다.
육 원 십이 원 이십사 원 사십팔 원 구십육 원 백구십이 원 팔 원 모자라는 이백 원…… 사백 원 팔백 원 일천육백 원 삼천이백 원 육천사백 원 일만 이천팔백 원. 팔백 원은 떼어 버리고 이만 사천 원 사만 팔천 원 구만 육천 원 십구만 이천 원 삼십팔만 사천 원 칠십육만 팔천 원 일백오십삼만 육천 원…….
삼 원을 열여덟 번만 곱집으면 일백오십만 원이 된다. 일백오십만 원 그놈이 있으면…… 이렇게 생각하매 어깨가 으쓱해졌다.
삼 원의 열여덟 곱쟁이가 일백오십만 원이니 퍽 쉬운 것이다…… 그놈만 있으면 백만 원을 들여서 오십 전짜리 십육 페이지 신문을 하나 했으면 우선 K사장의 엉엉 우는 꼴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대로 십오만 원만 있어도, 일만 오천 원 아니 일천오백 원만 있어도, 아니 일백오십 원만 있어도, 십오 원만 있어도 우선 방세와 전등삯을 주고 한 달은 살아가겠다.
P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 달? 한 달만 살고 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나……? 그래도 몇백 원은 있어야지, 아니 몇천 원은 아니 몇만 원은…….
P는 늘 하는 버릇으로 이런 터무니없는 공상을 되풀이하였다.
그는 최근 이러한 공상을 하면서부터 취직을 시들하게 여겼다.
취직이 된댔자 사오십 원이나 오륙십 원이 월급이다. 그것을 가지고 빠듯빠듯 살아간들 무슨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을 턱도 없는 것이다.
가령 근실히 해서 월괘 저금 같은 것도 하고 집도 장만하고 여편네도 생기고 사장이나 중역들의 눈에 들어 지위도 부장쯤으로는 올라가고, 그리하여 생활의 근거도 안정이 되고 하면 지금 같은 곤란은 당하지 아니하겠지만, 그러나 P에게는 아직도 젊은 때의 야심이 있어 그러한 고식된 안정이나 명색 없는 생활은 도리어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좀더 남의 눈에 띄고 좀더 재미있고 그리고 자유로운 생활.
물론 그는 지금이라도 누가 한 달에 삼십 원만 줄 테니 와서 일을 해달라면 마치 주린 개가 고기를 보고 덤비듯이 덮어놓고 덤벼들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와 딴판으로 배포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P가 삼청동으로 올라가느라고 건춘문 앞까지 이르렀을 때 저편에서 말쑥하게 몸치장을 한 여자 하나가 마주 내려왔다.
역시 삼청동 근처에 사는 여자인지 P와는 가끔 마주치는 여자다.
P는 그 여자와 만날 때마다 일부러 눈여겨보지 않는 체하면서도 실상은 고비 샅샅 관찰을 하였고, 그리고 속으로는 연애라도 좀 했으면 하던 터였었다. 무엇보다도 동그스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모두 모지지 아니하고 얼굴의 윤곽이 둥글듯이 모가 나지 아니한 것, 그래서 맘자리도 그렇게 둥글려니 하는 것이 P의 마음을 끈 것이다.
그 여자는 자주 만나는 이 헙수룩한 양복쟁이―---P를 먼빛으로도 알아보았는지 처녀다운 조심스런 몸매로 길을 가로 비껴 가까이 왔다.
P는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앞만 쳐다보면서도 속으로는, '저 여자가 지금 내 옆으로 다가와서 조그만 소리로 정답게 구애(求愛)를 한다면? 사뭇 들여 안긴다면……? 어쩔꼬?'
이런 생각을 하면서 히죽이 웃는데 여자는 벌써 지나쳐 버렸다.
'흥! 어쩌긴 무얼 어째……? 이년아, 일없다는데 왜 이래! 하고 발길로 칵 차 내던지지.'
하고 P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삼청동 꼭대기에 있는 집―---집이 아니라 사글세로 든 행랑방―---에 돌아왔다. 객지에 혼자 있으니 웬만하면 하숙에 있을 것이로되 방값이 밀리고 그것에 졸릴 것이 무서워 P는 방을 얻어 가지고 있던 것이다.
먹는 것이야 수중에 돈이 있는 데에 따라 호떡도 설렁탕도 백화점의 런치도, 그러잖고 몇 끼씩 굶기도 하여 대중이 없었다.
볕 구경을 잘 못 해서 겨울에도 곰팡이가 슬고 이불을 며칠씩 그대로 펴두는 방바닥에서는 먼지가 풀신풀신 올랐다.
하도 어설퍼 앉으려고도 아니 하고 방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있노라니까 안방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며 주인 노파가 나와서 캑 하고 기침을 한다. P는 또 방세 졸릴 일이 아득하였다.
그러나 노파는 방세보다도 우선 편지 한 장을 들이밀어 준다. 고향의 형에게서 온 것이다.
편지를 뜯어 읽고 난 P는 말가웃〔一斗半〕이나 되게 한숨을 푸― 내쉬었다. 그리고는 편지를 박박 찢어 버렸다.
5
편지의 요건은 P의 아들에 관한 것이다.
P에게는 연전에 갈린 아내와의 사이에 생긴 창선이라는 아들이 있다. 금년에 아홉 살이다.
아내와 갈릴 때에 저편에서 다만 어린애만이라도 주었으면 그것을 데리고 길러 가는 재미로 혼자 사는 세상에 낙을 붙이겠다고 사정하였다. 그리고 적어도 중학까지는 마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했으면 P도 한짐을 덜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아니하였다.
어릴 적부터 소박데기 어미의 손에서 아비의 원망과 푸념을 들어가면서 자란 자식은 자란 뒤에 그 아비에게 호감을 가지지 못한다. P는 자식을 꼭 찾고 싶은 것은 아니나 아무튼 장성하면 아비라고 찾아올 터인데 그때에 P는 이미 늙고 자식은 팔팔하게 젊은 놈이 옛날에 제 어미를 소박한 아비라서 아니꼽게 군다면 그것은 차마 못 당할 노릇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P는 창선이를 내주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빼앗아 놓고 보니 이제 겨우 너댓 살밖에 아니 먹은 것을 자기 손으로 어찌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어렵사리 지내는 그 형에게 맡겨 놓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보통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면 서울로 데려오겠다고 해두고.
P의 형은 작년에 조카를 보통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러나 극빈 축에 드는 집안인지라 몇 푼 아니 되는 월사금과 학비를 대지 못하여 중도에 퇴학시켰다. 애초에 입학시킬 상의로 P에게 편지를 했을 때에 P는 공부 같은 것은 시켜 봤자 소용이 없으니 차라리 뼈가 보드라운 때부터 생일〔勞動〕을 시키라고 하였다. P의 형은 그러나 백부(伯父)의 도리로나 집안의 체면으로나 창선이를 생일을 시킬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자기 손에 두어 헐벗기고 헐입히면서 공부도 시키지 못하느니 제 아비인 P더러 데려가라고 작년부터 편지를 하던 터이다.
금년도 입학 시기가 당하매 P의 형은 P에게 누차 편지를 하였다. 금년에 입학을 시키지 못하면 명년에는 학령이 초과되어 들여 주지 아니할 것이니 어서 데려다가 공부를 시키라는 것이다.
그 어린것이 굶기를 먹듯 하고 재주는 있으면서 남의 집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부러워하는 꼴은 차마 애처로워 볼 수가 없다. 차라리 이꼴 저꼴 보지 않는 것이 속이나 편하겠다.
이번 편지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고 끝에 가서,
여비가 몇 원 변통되면 차를 태우고 전보를 칠 테니 정거장에 나와 데려가거라. 나도 웬만하면 객지에 혼자 있는 너에게 어린 자식을 떠맡기듯이 보내겠느냐마는 잘못하다가 그것을 굶겨 죽이겠기에 생각다못해 단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이 씌어 있었다.
P는 박박 찢은 편지를 돌돌 뭉쳐 방구석에 내던지고 한숨을 푸― 내쉬었다.
이제는 자식을 데리고 있기가 피할 수 없이 되었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하는 것이다. 그는 형이 원망스럽고 아니꼬웠다.
굳이 제 아비를 따라 보낸다는 것이 아니라 부득부득 공부를 시키려는 것 때문이다. 기왕 서울로 보내나 시골서 데리고 있으나 고생시키기는 일반이니 차라리 시골서 일찍부터 생일이나 시켰으면 P에게는 여러 가지로 좋을 것이었다.
"흥! 체면! 공부! 죽여도 인텔리는 만들잖는다."
P는 혼자 이렇게 두덜거렸다.
"집에서 온 편지유? 무슨 걱정이 생겼수?"
말거리를 찾지 못하여 머뭇거리고 섰던 안방 노인이 동정이나 하는 듯이 이렇게 묻는다.
"아니오."
P는 마지못해 코대답을 하였다.
"필경 무슨 걱정이 생긴 게구려!"
노인은 자기의 말거리를 만들려고 아니라는데도 이렇게 걱정을 내어놓는다.
"그게 모다 가난한 탓이지…… 저렇게 젊고 똑똑한 이가 저게 모다 가난한 탓이야! 어데 구실〔職業〕자리 말한다더니 아직 아니 됐수?"
"네,아직……."
"거 큰일났구려! 어서 돼야 할 텐데…… 나도 꼭 죽겠수…… 이 늙은 것이……! 돈 좀 마련되잖았수?"
"네,아직 좀……."
"저걸 어쩌나! 오늘은 물값이야 전깃불값이야 사뭇 받으러 달려들 텐데!"
"메칠만 더 미루십시오. 설마하니 마나님이야 아니 드리겠습니까……."
"아무렴! 실수야 없을 줄 알지만 내가 하도 옹색하니깐 그러는 거지……."
P는 노인이 지껄이게 두어 두고 혼자 생각하였다. 전에 아는 집에서 셋방을 얻어 들었을 때에는 두 달이고 석 달이고 세가 밀려도 조르는 법이 없었다.
밀려도 조르지 아니하는 아는 집…… 이것이 P는 도리어 미안해서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옮겨 와가지고 막상 졸림질을 당하니 미안해도 졸리지는 아니하던 옛 집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노인이 문을 가로막고 서서 수다스런 소리로 더 지껄이려고 하는데 마침 P의 동무 M과 H가 찾아왔다.
"어데 나가나?"
M이 그러잖아도 벌씸한 코를 한번 더 벌씸하고 사이 벌어진 앞니를 내어 보이며 싱끗 웃는다.
몸집은 M과 같이 통통하지만 키가 적어 M의 뒤에 가려 섰던 H가 옆으로 나서며,
"안녕합시요."
하고 인사를 한다.
P는 싱끗이 웃었다. 이 M과 H는 같은 하숙에 있는데 두 사람은 곧잘 같이 돌아다닌다. 같이 가는 것을 나란히 세워 놓고 보면 하나는 키가 커서 우뚝하고 하나는 키가 작아서 납작 붙어 가는 것 같다.
얼굴도 M은 우둘부둘한 게 정객 타입으로 생겼고―---잘못하면 복싱 링에 내세워도 좋겠고―---H는 안존한 게 사무원 타입이다.
일상의 언행을 보아도 H는 무슨 이야기가 자기 전문인 법률에 관한 것에 다다르면 육법 전서의 조목을 따르르 외우면서 이러고저러고 하다고 설명을 하고, M은 동경서 학생 ××에 제휴를 했던만큼, 그리고 전문이 정경과인만큼 좌익 진영에서 쓰는 어투가 그대로 나온다.
"여전히 모다 동색(冬色)이 창연하군!"
P는 두 사람의 특특한 겨울 양복을 보고, 그리고 자기의 행색을 내려보며 웃었다.
M이 신을 벗고 들어와 먼지 앉은 책상 위에 걸터앉으며,
"춘래 불사춘일세."
하고 한마디 외운다. H도 따라 들어와 한편에 앉으며 한마디한다.
"아직 괜찮아…… 거리에서 보니까 동복 입은 사람이 많데……."
"괜찮기는 무어 괜찮아…… 우리가 길로 돌아다니니까 사방에서 아이구 아야! 소리가 들리데."
"왜?"
"봄이 발밑에서 짓밟히느라고."
"하하하하."
세 사람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
"참 시험 본 것 어떻게 되었소?"
P는 H가 일전에 총독부에서 본 고원 채용 시험을 생각하고 물어 보았다.
"말두 마시우…… 이제는 꼭 들어앉어 공부나 해갖고 변호사 시험이나 치겠소."
사람이 별로 변통성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저기 반연도 없어 취직이 여의하게 되지 못하는 것을 볼 때에 P는 가엾은 생각이 늘 들곤 하였다.
"가만있게…… 어서 변호사 시험만 패스하게. 그러면 이제 내가 백만 원짜리 주식회사를 조직해 가지고 자네를 법률 고문으로 모셔 옴세."
이것은 M이 늘 농삼아 하는 농담이다. M도 일년 동안이나 취직 운동을 하면서 지냈건만 그는 되레 배포가 유하다. 조금 더 재빠르게 했으면 M은 벌써 취직이 되었을는지도 모르나 그는 타고난 배포와 그리고 남에게 아유구용을 하기 싫어하는 성질로 말하자면 취직 전선의 낙오자다.
별로 만나야 할 일도 없다. 그러나 제각기 혼자 있으면 우울해지니까 이렇게 서로 찾으며 자주 만나게 된다.
만나 앉아서 이야기라도 지껄이면 그 동안만은 명랑하여진다. 지금 서울 안에 P니 M이니 H니와 매일 만나 하는 일 없이 돌아다니고 주머니 구석에 돈푼 있으면 서로 털어 선술잔이나 먹고 하는 룸펜의 패가 수없이 많다.
무어나 일을 맡겼으면 불이 번쩍 일게 해낼 팔팔한 젊은 사람들이다. 그렇건만 그들은 몸을 비비 꼬고 있다.
아무 데도 용납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적 ××에서 그들을 불러들이기에는 ××적 ××의 주관적 정세가 너무도 미약하다. 그것은 그들의 몇 부분이 동경서 학생으로 있을 시절에는 그 속에서 활발하게 ××을 계속하던 것이 조선에 나오면서 탈리되는 것으로 보아 그러한 해석을 내리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부르주아의 기성 문화기관에 들어가자니 그곳에서는 수요를 찾지 아니한다. 레디메이드로 된 존재들이니 아무 때라도 저편에서 필요해야만 몇씩 사들여 간다.
M이 마코를 꺼내 놓고 붙여 문다. P는 포켓 속에 들어 있는 해태를 차마 내놓기가 낯이 따가워 M의 마코를 집어 당겼다.
……(원문 80여 자 탈락)……
P는 설명을 시작한다. P 자신 그러한 장난 비슷한 공상은 하면서 일단 해보라고 하면 주저할 것이지만 어쨌거나 그랬으면 통쾌하리라는 것이다.
"먼점 경무국에 들어가서 아주 까놓고 이야기를 한단 말이야. 우리가 지금 대상으로 하는 것은 총독부가 아니라 조선의 소위 민간측 유지들이니까 간섭을 말어 달라고."
"그러면 관허(官許) 메이 데이로구만."
"그래 관허도 좋아…… 그래 가지고는 기에다가는 무어라고 쓰느냐 하면 '우리에게 향학열을 고취한 놈이 누구냐?' ……어때?"
"조―치!"
"인텔리에게 직업을 대라…… 이렇게 노래를 지어 부르거든."
……(원문 10여 자 탈락)……
"응…… 유지와 명사의 가면을 박탈시키라고…… 한 몇십 명이 그렇게 데모를 한단 말이야! 하하하하."
M은 이렇게 웃고 H는 시원찮게 핀잔을 준다.
"드끄럽소, 여보…… 아 글쎄 멀끔멀끔한 양복쟁이들이 종로 네거리로 기를 받고 그렇게 다녀 봐! 애들이 와서 나 광고지 한 장 주, 하잖나."
"하하하하."
"허허허허."
창 밖에서 냉이장수가 싸구려 소리를 외치고 지나간다. M이 그에 응하여,
"이크! 봄을 덤핑하는구나!"
"흥, 경제학자라 달르군…… 참 우리 하숙에서는 채소를 좀 멕여 주어야지!"
"밥값을 잘 내보지."
"그도 그렇지만."
"나는 석 달 치 밀렸네."
"나도 그렇게 될걸."
"그러니까 나처럼 이렇게 아파트 생활을 해요."
이것은 P의 말이다. 아파트라고 말해 놓고도 서글퍼서 허허 웃었다.
"조선식 아파트! 그렇지만 우리가 아파트 생활을 했다면 아마 두어 달 전에 굶어 죽었을걸."
"나는 돈을 보면 초면 인사를 해야 되겠네…… 본 지가 하도 오래라서 낯을 잊었어."
"여보게." 하고 M이 의젓하게 H를 달군다.
"돈 구경한 지 오래 됐다지?"
"응."
"존 수가 있네."
"뭣?"
"자네 책 좀 삼사(三四) 구락부에 보내세."
"싫으이."
"자네 돈 구경하고…… 구경하고 나서 그놈으로 한잔 먹고…… 한잔 말이 났으니 말이지 요즘 같으면 술이나 실컷 먹고 주정이라도 했으면 속이 시언하겠네."
"그러니까 말이야…… 가세. 가서 다섯 권만 잽혀."
"일없다."
"내가 찾어 주지."
"흥."
"정말이야."
"싫여."
6
그날 밤.
P와 M은 H를 졸라 그의 법률책을 잡혀 돈 육 원을 만들어 가지고 나섰다.
선술집에 가서 엔간히 취하도록 먹은 뒤에 C라는 카페에 가서 술 두 병을 놓고 자정이 되도록 노닥거렸다.
그곳에서 나올 때는 육 원 돈이 이 원 남았다. 이 원의 처치를 생각하던 세 사람은 일제히 동관으로 가기로 하였다.
세 사람이 모두 다리가 비틀거렸다. 그 중에도 P는 더욱 취하였다.
늴리리 가락으로 들어박힌 갈봇집.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을 세 사람이 아는 집 들어서듯이 쑥쑥 들어서니,
"들어옵시오."
"어서 옵시오."
라고 머리 딴 계집애와 배가 북통 같은 애 밴 계집이 마루로 나선다.
P가 무심결에 해태갑을 꺼내어 붙여 무니까 머리 딴 계집애가 P의 목을 걸싸안고 볼에다 입을 쪽 맞추더니,
"나도 하나."
하고 손을 벌린다. P는 기가 막혀 담뱃갑을 내미는데 H와 M은 박수를 하며,
"부라보!"
하고 굉장하게 큰 소리로 외친다.
건넌방에 들어가 앉으니 마루에서 따그락따그락 소리가 난다.
배부른 계집은 푸대접을 받고 머리 딴 계집애가 H와 M의 손으로 옮겨 다니면서 주물린다. 깩깩 소리를 지르고 엄살을 한다. 말을 붙이고 대답을 주고받고 하는 것이 H와 M은 전에 한번 와본 집인 듯하다.
술상이 들어왔다.
잔은 사발만한데 술주전자는 눈알만하다. 술을 부어 놓으니 M이 척 받아 놓고는 노래를 투정한다. 계집애는 그보다 더 약아 제가 그 술을 쪽 들이마시고는 빈 잔만 M의 입에 대어 준다.
P는 개숫물같이 밍밍한 술을 두어 잔 받아 먹는 동안에 비위가 콱 거슬려서 진정하느라고 드러누웠다.
H가 계집애를 무릎에 올려놓고 신이 나게 노래를 부른다. 물론 고저도 장단도 맞지 아니하는 노래다.
M이 애 밴 계집을 실컷 시달려 주다가 머리 딴 계집애를 빼앗아 가더니 귀에 대고 무어라고 속삭거린다. 그러면서 둘이서 연해 P를 건너다보며 싱긋벙긋 웃는다.
조금 있다가 계집애가 P에게로 오더니 귀에다 입을 대고 속삭인다.
"저이가 나더러 당신하고 오늘 저녁…… 응 어때?"
"그래라."
P는 불쑥 성난 것처럼 대답했다.
"아이! 승거워!"
계집애는 P를 한번 꼬집어 주고 다시 M에게로 달아났다.
M에게로 가서 또 무어라고 속삭거리더니 재차 와가지고는 귓속말을 한다.
"자고 가,응."
"그래 글쎄."
"꼭."
"응."
"정말."
"응."
술은 네 주전자가 들어왔는데 세 사람 손님은 두서너 잔씩밖에 아니 먹었다. 그 나머지는 다 저희가 먹었다. 계집애가 술이 곤주가 되게 취해 가지고 해롱해롱 까분다.
술값을 치르는 것을 보고 P도 따라 일어섰다. M이 몸뚱이로 슬쩍 밀어서 방 안으로 들여보내고 뒤에서 계집애가 양복 뒷깃을 잡아당긴다.
"그래라, 자고 간다."
P는 방 가운데 벌떡 드러누웠다.
"너이 집이 어디냐?"
계집애가 옆에 와서 앉는 것을 보고 P가 물었다.
"××도 ××."
"언제 왔니?"
"작년에."
P는 몸을 일으켰다. 또 속이 왈칵 뒤집혀 좀더 진정하려고 하는 생각인데 계집애가 콱 밀어뜨린다.
"나이 몇 살이냐?"
"열여덟."
"부모는?"
"부모가 있으면 여기서 이 짓을 해?"
"왜 이 짓이 나쁘냐?"
"흥…… 나도 사람이야."
"에―꾸! 나는 네가 신선인 줄 알었더니 인제 알고 보니까 사람이로구나!"
"드끄러!"
계집애는 눈을 쭉 흘기고는 갑자기 웃으면서 P의 목을 그러안는다.
"자고 가, 응."
"우리 마누라한테 볼기 맞고 쫓겨난다."
"그러면 나한테 와서 나하고 살지…… 여기 내 빚 팔십 원만 물어 주면……."
"팔십 원이냐?"
"응."
"가겠다."
P가 또 일어나려는 것을 계집이 껴안고 놓지 아니한다.
"자고 가…… 내가 반했어."
"아서라."
"정말!"
"놓아."
"아니야, 안 놓아. 자고 가요, 응…… 자고…… 나 돈 좀 주어."
"돈? 내가 돈이 있어 보이니?"
"돈 소리가 절렁절렁 나는데?"
미상불 P의 포켓 속에서는 아까부터 잔돈 소리가 가끔 잘랑거렸다.
"자고 나 돈 조―꼼 주고 가, 응."
"얼마나?"
"암만도 좋아…… 오십 전도, 아니 이십 전도."
계집애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P는 불에 덴 것같이 벌떡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그는 포켓 속에 손을 넣어 있는 대로 돈을 움켜쥐어 방바닥에 홱 내던졌다. 일 원짜리 지전 두 장과 백동전이 방바닥에 요란스럽게 흐트러진다.
"아따 돈!"
해 던지고는 P는 뛰어나왔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괴었다.
7
P는 정조(貞操)적으로 순진한 사나이가 아니다. 열네 살 때에 소꿉질 같은 장가를 갔고 그 뒤 동경 가서 있을 동안에 거기 여자와 살림도 하였다.
조선에 돌아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이에 기생과 사귀어 한동안 죽을 동 살 동 모르게 지내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정을 두어 지낸 여자가 두엇 더 있다. 그러나 삼십이 되도록 지금까지 유곽을 가거나 은근짜 집을 가거나 동관의 색주가 집에 가서 잠자리를 한 일은 없다.
그것은 P의 괴벽이다. 어떠한 여자를 막론하고 그가 정이 들지 아니한 여자면 절대로 관계를 아니 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한번 P의 눈에 들면 따라서 정이 들면 아무것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심각한 열정에 맡기어 완전히 그 여자를 움켜쥐어 버리며 또한 그 여자에게 전부를 내주어 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늘 올 오어 너싱(All or nothing)을 말한다.
이것이 처세상 퍽 이롭지 못한 것을 P도 잘 안다. 또 공연한 승벽이요 고집인 줄 알건만 그는 그것을 고치지 못한다.
이날 밤에도 그는 그 계집애를 조금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나지 아니하였다.
술취한 끝에 속이 괴로우니까 진정을 하자는 판인데 '오십 전 아니 이십 전도 좋아' 하는 소리에 버쩍 흥분이 된 것이다.
너무도 인간이 단작스럽고 악착스러운 것 같았다. P가 노상 보고 듣는 세상이 돈을 중간에 놓고 악착스럽게 아둥바둥하는 것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정조 대가로 일금 이십 전을 요구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P는 그러한 여자가 정조를 파는 데 무신경한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이 비도덕이니 어쩌니 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관점과 해석은 그런 것보다 더 나아간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이십 전만 주어도' 소리에는 이것저것 생각하고 헤아릴 나위도 없었다. 더럽고 얄미우면서 그러면서도 눈물이 괴었다. 삼 원쯤 되는 전재산을 털어 내던지고 정신없이 뛰어나온 것이다.
술취한 P를 혼자 남겨 둔 H와 M은 골목에 기다리고 서서 있었다. P가 뛰어나오는 것을 보고 그들은 우선 농을 건넨다.
"한턱 하오."
"장가간 턱 하게."
P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멍하니 서서 생각을 하였다.
다분의 가면 밑에서 꿈틀거리는 인도주의에 몹시 증오를 느끼는 P는 이날 밤 자기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지 몰라 괴로워하였다.
내일을 굶어야 할 그 돈이지만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다. 정조값으로 이십 전을 주어도 좋다는데 왜 정조는 퇴하고 돈만 있는 대로 다 떨어 주었는가? 왜 눈에 눈물은 괴었는가?
8
P는 머리가 띵하고 속이 뉘엿거리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는 두 친구에게 인사도 변변히 하지 아니하고 코를 벤 듯이 삼청동으로 올라왔다. 어서 바삐 좀 드러눕고만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방구들은 차고 지저분하게 늘어놓았어도 제 처소는 반가운 것이다. 더구나 몸이 괴로울 때는!
P는 누더기 양복이나마 벗으려고도 아니 하고 그대로 펴두었던 이부자리 속에 몸을 파묻었다. 드러누우니 취기가 새삼스레 더하여 영영 옷 벗을 생각도 잊어버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자고 났는지 괴로워 부대끼다 못하여 잠이 깨었을 때는 목이 타는 듯이 말랐다.
물은 없다. 물이 없어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목은 더 말랐다.
밤은 어느 때나 되었는지 짐작할 수가 없다. 전등은 그대로 켜져 있다. 밖에서는 사람 지나다니는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아니한다. 전차 갈리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고 가끔가다가 자동차의 경적이 딴세상의 소리같이 감감하게 들려 온다.
밤이 깊지 아니했으면 잠긴 안대문을 두드려 주인 노인에게라도 물을 청하겠지만 이 깊은 밤에 그리하기도 미안하다. 그것도 방세나 여일하게 내었을세 말이지 얼굴 대하기를 이편에서 피하는 판에 차마 못 할 일이다.
물지게장수의 삐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나 하고 귀를 기울였으나 감감히 소리가 없다.
목은 더욱더욱 말라들어 온다. 입술이 바싹 마르고 입 안이 침기가 없고 목구멍이 바삭바삭 소리가 날 듯이 마르고, 그리고는 창자 속까지 말라 내려가는 듯하다.
방금 미칠 듯하다.
눈앞에 용용하게 흘러가는 푸른 한강이 어릿어릿하고 쏴― 쏟아지는 수통 꼭지가 보이는 듯하다.
P는 배고픈 고비는 많이 겪어 보았으나 이대도록도 목마른 참은 당하기 처음이다.
배는 고프면 기운이 없고 착 가라앉을 뿐이었지만 목이 극도로 마름에는 금시 미치고 후덕후덕 날뛸 것 같다.
일어나서 삼청동 꼭대기로 올라가면 산골짜기의 물도 있고 또 우물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어두운 밤에 어디가 어딘지 보이지 아니할 테고 또 우물에는 두레박도 없을 것이다.
겨우겨우 참아 가며 몇 시간을 삐대었다. 실상 한 시간도 못 되는 동안이지만 P에게는 여러 시간인 듯만 싶었다.
그런 뒤에 겨우 물지게 소리를 듣고 그는 수통 있는 곳을 찾아 뛰어나갔다.
사정 이야기도 변변히 하지 아니하고 쏟아지는 수통 꼭지에 매어달려 한 동이는 되리시피 냉수를 들이켰다. 물장수가 어이가 없어 멀끔히 쳐다보고만 있다가 P의 꾸벅 하고 돌아서는 등뒤에다 혀를 끌끌 찬다.
밥보다도 더 다급하게 그립던 물을 실컷 들이켜고 나니 찌뿌드하게 엉킨 듯 불쾌하던 취기(醉氣)도 적이 걷히고 정신이 말쑥하여졌다.
P는 새삼스럽게 양복을 벗어 던지고 다시 자리에 파묻혔다. 이제는 잠이 십 리나 달아나고 눈이 초랑초랑하여진다. 그러면서 어젯밤 일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것은 마치 못 먹을 것을 먹은 것처럼 께름칙한 기억이다. 아무렇게나 씻어 넘겨 버리재도, 그러나 머리 한구석에 박혀 가지고 사라지려 하지 아니하는 어룽〔班點〕과 같다. 어떻게 해서라도 시원스러운 해석을 내리고라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정조 대가로 일금 이십 전을 부르는 여자…….
방금 세상에는 한번 정조를 빼앗긴 것으로 목숨을 버려 자살하는 여자가 있다. 그러는 한편 '이십 전도 좋소' 하는 여자가 있다.
여자의 정조가 그것을 잃었다고 자살을 하도록 그다지도 고귀한 것이라면 '이십 전에도 팔겠소' 하는 여자가 눈을 멀끔멀끔 뜨고 살아 있는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또 정조를 '이십 전에도 팔겠소' 하는 여자가 있도록 그것이 아무렇지도 아니한 것이라면 그것을 한번 빼앗긴 때문에 생명을 내버리는 여자가 있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이 두 여자가 모두 건전한 양심의 소유자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가운데 나무라기로 들면 차라리 정조를 빼앗긴 것으로 자살한 여자를 나무랄 것이지 '이십 전에 팔겠소' 하는 여자는 나무랄 수가 없다.
열여섯 살부터 시작하여 이래 삼 년이나 색주가 집으로 굴러다니는 여자다.
언제 누구에게 귀떨어진 도덕 관념이나 정당한 인생관을 얻어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술잔을 들고 앉아 한 잔이라도 오는 손님에게 더 먹여 한푼 어치라도 주인의 수입을 도와 주면 칭찬이 오니 그만이다.
"고년 어여쁘다. 나하고 ××."
하고 손님이 말하면 그에 좇아 비록 조발(早發)일지언정 생리적 만족을 얻는 한편 그야말로 단돈 이십 전이라도 벌면 그만이다.
옆에서 그것을 시키기는 할지언정 그것이 나쁘다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는 것이다. 사실 일반 매춘부가 정조적으로 양심을 가진 듯이 보인다는 것은 그 대부분이 되레 한 가식(假飾)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정당성을 가진 노동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보고 불쌍하다고 여기고 동정을 하는 것은 위문이 폐문이다.
지금 세상은 정당한 성도덕(性道德)이 서 있는 때도 아니다.
그것은 한 세대에 여러 가지의 시대 사조가 헝클어져 있는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자의 정조에 대하여도 일률적으로 선악과 시비를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하룻밤 몸값을 '이십 전도 좋소' 하는 여자, 그에게는 다른 사람이 갖는 성도덕도 없고 따라서 자신을 타락이라서 슬퍼하지도 아니한다.
그 여자 자신을 나무랄 필요도 없는 것이요, 동정을 할 며리도 없는 것이다. 그 여자 자신은 결코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예수의 사랑( ? )도 아무리 그 사랑이 크고 넓다 했을지언정 그것은 '불쌍한 사람', '죄 지은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불쌍하지 아니한', '죄 짓지 아니한' 동관의 색주가 계집애에게는 누구의 동정이나 사랑도 일없는 것이다.
'뭣? 관념적이라고?'
그렇다. 관념적이라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 여자의 주관을 객관화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한 엄연한 현실이다.
……(원문 30여 자 탈락)……
또 그 병적 현실에 메스를 대는 것은 집단의 역사적 문제이지만 룸펜 인텔리의 결벽과 흥분쯤으로는 문제도 되지 아니한다.
다만 취객이 삼 원 각수를 던져 주었음으로 해서 그 여자는 감격 없는 기쁨을 맛보았을 뿐일 것이다.
'이게 웬 떡이냐…… 어제 저녁에 꿈이 괜찮더니 이런 땡을 잡을 양으로 그랬구나…… 웬 얼간망둥이냐.'
그 계집애는 응당 그렇게밖에는 더 생각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결코 무리가 없는 당연한 일이다.
P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입맛 쓴 고소를 띠었다.
'흥! 되지 못하게…… 장님이 눈병 앓는 사람더러 불쌍하다고 한 셈인가.'
P는 돌아누우면서 혀를 끌끌 찼다.
9
일천구백삼십사년의 이 세상에도 기적이 있다.
그것은 P가 굶어 죽지 아니한 것이다. 그는 최근 일주일 동안 돈이 생긴 데가 없다. 잡힐 것도 없었고 어디서 벌이를 한 적도 없다.
그렇다고 남의 집 문 앞에 가서 밥 한술 주시오 하고 구걸한 일도 없고 남의 것을 훔치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 굶어 죽지 아니하였다. 야위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멀쩡하게 살아 있다. P와 같은 인생이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이 싹 치운다면 근로하는 사람이 조금은 편해질는지도 모른다.
P가 소부르주아 축에 끼이는 인텔리가 아니요 노동자였더라면 그 동안 거지가 되었거나 비상수단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러한 용기도 없다. 그러면서도 죽지 아니하고 살아 있다. 그렇지만 죽기보다도 더 귀찮은 일은 그를 잠시도 해방시켜 주지 아니한다.
그의 아들 창선이를 올려보낸다고 어제 편지가 왔고 오늘은 내일 아침에 경성역에 당도한다는 전보까지 왔다.
오정 때 전보를 받은 P는 갑자기 정신이 난 듯이 쩔쩔매고 돌아다니며 돈 마련을 하였다. 최소한도 이십 원은…… 하고 돌아다닌 것이 석양 때 겨우 십오 원이 변통되었다.
종로에서 풍로니 냄비니 양재기니 숟갈이니 무어니 해서 살림 나부랭이를 간단하게 장만하여 가지고 올라오는 길에 전에 잡지사에 있을 때 안 ××인쇄소의 문선 과장을 찾아갔다.
월급도 일없고 다만 일만 가르쳐 주면 그만이니 어린아이 하나를 써달라고 졸라 대었다.
A라는 그 문선 과장은 요리조리 칭탈을 하던 끝에―---그는 P가 누구 친한 사람의 집 어린애를 천거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보통학교나 마쳤나요?"
하고 물었다.
"아―니오."
P는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나이 몇인데?"
"아홉 살."
"아홉 살?"
A는 놀라 반문을 하는 것이다.
"기왕 일을 배울 테면 아주 어려서부터 배워야지요."
"그래도 너무 어려서 원…… 뉘 집 애요?"
"내 자식놈이랍니다."
P는 그래도 약간 얼굴이 붉어짐을 깨달았다. A는 이 말에 가장 놀라운 일을 보겠다는 듯이 입만 벌리고 한참이나 P를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왜? 내 자식이라고 공장에 못 보내란 법 있답디까?"
"아―니, 정말 그래요?"
"정말 아니고?"
"괜히 실없는 소리……! 자제라고 해야 들어줄 테니까 그러시지?"
"아니, 그건 그렇잖애요. 내 자식놈야요."
"그럼 왜 공부를 시키잖구?"
"인쇄소 일 배우는 것도 공부지."
"그건 그렇지만 학교에 보내야지."
"학교에 보낼 처지도 못 되고 또 보낸댔자 사람 구실도 못 할 테니까……."
"거 참 모를 일이오…… 우리 같은 놈은 이 짓을 해가면서도 자식을 공부시키느라고 애를 쓰는데 되려 공부시킬 줄 아는 양반이 보통학교도 아니 마친 자제를 공장엘 보내요?"
"내가 학교 공부를 해본 나머지 그게 못쓰겠으니까 자식은 딴 공부를 시키겠다는 것이지요."
"글쎄 정 그러시다면 내가 내 자식 진배없이 잘 데리고 있으면서 일이나 착실히 가르쳐 드리리다마는…… 원 너무 어린데 애차랍잖애요?"
"애차라운 거야 애비 된 내가 더하지요만 그것이 제게는 약이니까……."
P는 당부와 치하를 하고 인쇄소를 나왔다. 한짐 벗어 놓은 것같이 몸이 거뜬하고 마음이 느긋하였다.
그는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싸전에 쌀 한 말을 부탁하고 호배추도 몇 통 사들였다. 그렁저렁 오 원을 썼다.
십 원 남은 중에 주인 노인에게 육 원을 내어 주니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다. 그 끝에 P가 사온 호배추를 내어 주며 김치를 담가 달라고 하니 선선히 응낙한다. 그리고 자식을 데리고 자취를 하겠다니까 깍두기야 간장이야 된장 같은 것을 아까운 줄 모르고 날라다 주곤 한다.
10
이튿날 전에 없이 첫새벽에 일어난 P는 서투른 솜씨로 화롯밥을 지어 놓고 정거장으로 나갔다.
그의 형에게서 온 편지에 S라는 고향 사람이 서울 올라오는 길에 따라 보낸다고 했으니까 P는 창선이보다도 더 낯이 익은 S를 찾았다.
과연 차가 식식거리고 들어서매 인간을 뱉어 내놓는 찻간에서 S가 창선이를 데리고 두리번거리며 내려왔다.
어디서 생겼는지 새까만 고쿠라 양복을 입고 이화표 붙은 학생 모자를 쓰고 거기다가 보따리를 하나 지고 무엇 꾸린 것을 손에 들고 차에서 내리는 어린아이…… 저게 내 자식이니라 생각하니 P는 어쩐지 속으로 얼굴이 붉어지며 한편 가엾기도 하였다.
S가 두 손에 짐을 가득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가까이 온 P를 보고 반겨 소리를 지른다. 창선이가 모자를 벗고 학교식으로 경례를 한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네댓 살 적에 보던 것보다 더한층 저의 외가를 닮았다. P는 그것이 몹시 불만이었다.
"그새 재미나 좋았나?"
S의 하는 첫인사다.
"뭘 그저 그렇지…… 괜한 산 짐을 지고 오느라고 애썼네."
P는 이렇게 인사 겸 치하를 하였다.
"원 천만에……! 그 애가 나이는 어려도 어떻게 속이 찼는지…… 너 늬 아버지 알어보겠니?"
S는 창선이를 돌아보며 웃는다. 창선이는 고개를 숙이고 수줍은지 아무 대답도 아니 한다.
P는 S와 창선이를 데리고 구름다리로 올라왔다.
"저희 외할머니가 저 양복이야 떡이야 모다 해가지고 자네 댁에까지 오섰더라네…… 오서서 어제 떠나는데 정거장까지 나오섰는데 여러 가지 신신당부를 하시데…… 자네에게 전하라고."
S는 P가 그다지 듣고 싶지도 아니한 이야기를 뒤따라오며 늘어놓는다. 그의 가슴에는 옛날의 반감이 솟쳐 올랐다.
"별걱정 다 하든 게로군…… 내 자식 내가 어련히 할까 버 쫓아다니며 그래!"
"그래도 노인들이야 어데 그런가…… 객지에서 혼자 있는데 데리고 있기 정 불편하거든 당신에게로 도루 보내게 하라고 그러시데……."
"그 집에 내 자식이 무슨 상관이 있어서 보내라는 거야……? 보낼 테면 그때 데려왔을라구……."
P는 그것이 모두 그와 갈린 아내의 조종인 줄 알기 때문에 더구나 심정이 났다. 화가 나는 대로 하면 어린아이가 입고 온 양복도 벗겨 내던지고 싶었으나 꿀꺽 참았다.
11
일찍 맛보아 보지 못한 새 살림을 P는 시작하였다.
창선이가 도착한 날 밤.
창선이는 아랫목에서 삭삭 잠을 자고 있다. 외롭게 꿈을 꾸고 있으려니 생각하매 전에 없던 애정이 솟아오르는 듯하였다.
이튿날 아침 일찍 창선이를 데리고 ××인쇄소에 가서 A에게 맡기고 안 내키는 발길을 돌이켜 나오는 P는 혼자 중얼거렸다.
"레디메이드 인생이 비로소 겨우 임자를 만나 팔리었구나."
▥
태평천하
(1938년)
조광 27~35 (1938.1~9)
태평천하(1938년)
♥♥♥♥♥♥♥♥♥♥♥♥♥♥♥♥♥♥♥♥♥♥♥♥♥♥♥♥♥♥♥♥♥♥
제1장. 윤직원 영감 귀택지도(歸宅之圖)
추석을 지나 이윽고, 짙어 가는 가을 해가 저물기 쉬운 어느 날 석양.
저 계동(桂洞)의 이름 난 장자〔富者〕윤직원(尹直員) 영감이 마침 어디 출입을 했다가 방금 인력거를 처억 잡숫고 돌아와, 마악 댁의 대문 앞에서 내리는 참입니다.
간밤에 꿈을 잘못 꾸었던지, 오늘 아침에 마누라하고 다툼질을 하고 나왔던지, 아무튼 엔간히 일수 좋지 못한 인력거꾼입니다.
여느 평탄한 길로 끌고 오기도 무던히 힘이 들었는데 골목쟁이로 들어서서는 빗밋이 경사가 진 이십여 칸을 끌어올리기야, 엄살이 아니라 정말 혀가 나올 뻔했습니다.
이십팔 관, 하고도 육백 몸메……!
윤직원 영감의 이 체중은, 그저께 춘심이년을 데리고 진고개로 산보를 갔다가 경성우편국 바로 뒷문 맞은편, 아따 무어라더냐 그 양약국 앞에 놓아 둔 앉은뱅이저울에 올라 서본 결과, 춘심이년이 발견을 했던 것입니다.
이 이십팔 관 육백 몸메를, 그런데, 좁쌀계급인 인력거꾼은 그래도 직업적 단련이란 위대한 것이어서, 젖 먹던 힘까지 아끼잖고 겨우겨우 끌어올려 마침내 남대문보다 조금만 작은 솟을대문 앞에 채장을 내려놓곤, 무릎에 드렸던 담요를 걷기까지에 성공을 했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옹색한 좌판에서 가까스로 뒤를 쳐들고, 자칫하면 넘어 박힐 듯싶게 휘뚝휘뚝하는 인력거에서 내려오자니 여간만 옹색하고 조심이 되는 게 아닙니다.
"야, 이 사람아……!"
윤직원 영감은 혼자서 내리다 못해 필경 인력거꾼더러 걱정을 합니다.
"……좀 부축을 히여 줄 것이지. 그냥 그러구 뻐언허니 섰어야 옳담 말잉가?"
실상인즉 뻔히 섰던 것이 아니라, 가쁜 숨을 돌리면서 땀을 씻고 있었던 것이나, 인력거꾼은 책망을 듣고 보니 미상불 일이 좀 죄송하게 되어, 그래 얼핏 팔을 붙들어 부축을 해드립니다.
내려선 것을 보니, 진실로 거판진 체집입니다.
허리를 안아 본다면, 아마 모르면 몰라도 한 아름하고도 반은 실히 될까 봅니다. 그런데다가 키도 알맞게 다섯 자 아홉 치는 넉넉합니다. 얼핏 알아듣기 쉽게 빗대면, 지금 그가 타고 온 인력거가 장난감 같고, 그 큰 대문간이 들어서기도 전에 사뭇 그들먹합니다.
얼굴도 좋습니다.
거금 삼십여 년 전에 몇 해를 두고 부안(扶安), 변산(邊山)을 드나들면서 많이 먹은 용(茸)이며 저혈(猪血) 장혈(獐血)이며, 또 요새도 장복을 하는 인삼 등속의 약효로 해서 얼굴은 불콰하니 동안(童顔)이요, 게다가 많지도 적지도 않게 꼬옥 알맞은 수염은 눈같이 희어, 과시 홍안백발의 좋은 풍신입니다.
초리가 길게 째져 올라간 봉의 눈, 준수하니 복이 들어 보이는 코, 부리가 추욱 처진 귀와 큼직한 입모, 다아 수부귀다남자(壽富貴多男子)의 상입니다.
나이……? 올해 일흔두 살입니다. 그러나 시삐 여기진 마시오. 심장 비대증으로 천식(喘息)기가 좀 있어 망정이지, 정정한 품이 서른 살 먹은 장정 여대친답니다. 무얼 가지고 겨루든지 말이지요.
그 차림새가 또한 혼란스럽습니다. 옷은 안팎으로 윤이 지르르 흐르는 모시 진솔 것이요, 머리에는 탕건에 받쳐 죽영(竹纓) 달린 통영갓〔統營笠〕이 날아갈 듯 올라앉았습니다.
발에는 크막하니 솜을 한 근씩은 두었음직한 흰 버선에, 운두 새까만 마른신을 조그맣게 신고, 바른손에는 은으로 개대가리를 만들어 붙인 화류 개화장이요, 왼손에는 서른네 살배기 묵직한 합죽선입니다.
이 풍신이야말로 아까울사, 옛날 세상이었더면 일도(一道) 방백(方伯)일시 분명합니다. 그런 것을 간혹 입이 비뚤어진 친구는 광대로 인식 착오를 일으키고 동경, 대판의 사탕장수들은 캐러멜 대장감으로 침을 삼키니 통탄할 일입니다.
인력거에서 내려 선 윤직원 영감은, 저절로 떠억 벌어지는 두루마기 앞섶을 여미려고 하다가 도로 걷어 젖히고서, 간드러지게 허리띠에 가 매달린 새파란 염낭끈을 풉니다.
"인력거 쌕이(삯이) 몇 푼이당가?"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당자 역시 전라도 태생이기는 하지만, 그 전라도 말이라는 게 좀 경망스럽습니다.
"그저 처분해 줍사요!"
인력거꾼은 담요로 팔짱낀 허리를 굽신합니다. 좀 점잖다는 손님한테는 항투로 쓰는 말이지만, 이 풍신 좋은 어른께는 진심으로 하는 소립니다. 후히 생각해 달란 뜻이지요.
"으응! 그리여잉? 그럼, 그냥 가소!"
윤직원 영감은 인력거꾼을 짯짯이 바라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풀었던 염낭끈을 도로 비끄러맵니다.
인력거꾼은 어쩐 영문인지를 몰라 뚜렛뚜렛하다가, 혹시 외상인가 하고 뒤통수를 긁적긁적하면서,
"그럼, 내일 오랍쇼니까?"
"내일? 내일 무엇 하러 올랑가?"
윤직원 영감은 지금 심정이 약간 좋지 못한 일이 있는데, 가뜩이나 긴찮이 잔말을 씹힌대서 적이 안색이 변합니다.
그러나 이편 인력거꾼으로 당하고 보면, 무엇 하러 오다니, 외상 준 인력거 삯 받으러 오지요라는 것이지만, 어디 무엄스럽게 그런 말을 똑바로 대고 하는 수야 있나요.
그러니 말은 바른 대로 하지 못하고, 그래 자못 난처한 판인데, 남의 그런 속도 몰라주고 윤직원 영감은 인제는 내 할 말 다아 했다는 듯이 천천히 돌아서 버리자고 합니다.
인력거꾼은, 이러다가는 여느 때도 아니요, 허파가 터질 뻔한 오늘 벌이가 눈 멀뚱멀뚱 뜨고 그만 허사가 되지 싶어, 대체 이 어른이 어째서 이러는지는 모르겠어도, 그건 어찌 되었든지 간에 좌우간 이렇게 병신스럽게 우물쭈물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라고 크게 과단을 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어, 삯 말씀이올습니다. 헤……."
크게 과단을 낸다는 게 결국은 크게 조심을 하는 것뿐입니다.
"싹?"
"네에!"
"아―니 여보소, 이 사람……."
윤직원 영감은 더러 역정을 내어 하마 삿대질이라도 할 듯이 한 걸음 나섭니다.
"……자네가 아까 날더러 처분대루 허라구 허잖있넝가?"
"네에!"
"그렇지……? 그런디 거, 처분대루 허람 말은 맘대루 허람 말이 아닝가?"
인력거꾼은 비로소 속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참 기가 막힙니다. 농도 할 사람이 따로 있지요. 웬만하면, 허허! 하고 한바탕 웃어 젖힐 노릇이겠지만 점잖은 어른 앞에서 그럴 수는 없고, 그래 히죽이 웃기만 합니다.
"……그리서 나넌 그렇기 처분대루, 응……? 맘대루 말이네. 맘대루 허라구 허길래, 아 인력거 삯 안 주어도 갱기찮헌 종 알구서, 그냥 가라구 히였지!"
인력거꾼은 이 어른이 끝끝내 농을 하느라고 이러는가 했지만, 윤직원 영감의 안색이며 말씨며 조금도 그런 내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거 참……! 나는 벨 신통헌 인력거꾼도 다아 있다구, 퍽 얌전허게 부았지! 늙은 사람이 욕본다구, 공으루 인력거 태다 주구 허넝 게 쟁히 기특허다구. 이 사람아, 사내대장부가 그렇기 그짓말을 식은 죽 먹듯 헌담 말잉가? 일구이언은 이부지자(一口二言二父之子)라네. 암만히여두 자네 어매(어머니)가 행실이 좀 궂었덩개비네!"
인력거꾼쯤이니 일구이언은 이부지자라는 공자님식의 욕이야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자네 어매가 행실이 궂었덩개비네 하는 데는 슬며시 비위가 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실상 그렇지 않아도 인력거 삯을 주지 않으려고 농인지 진정인지는 모르겠으되, 쓸데없는 승강을 하려 드는 게 심정이 좋지 않은 참인데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이건 한다는 소리가 거짓말을 한다는 둥, 또 죽은 부모를 편삿놈이 널〔棺〕머리 들먹거리듯 들먹거리는 데야 누군들 좋아할 이치가 있다구요.
사실 웬만한 내기가 인력거를 타고 와설랑, 납작한 초가집 앞에서 그따위 수작을 했다가는 인력거꾼한테 되잡혀 가지곤 뺨따구니나 한대 넙죽하니 얻어맞기가 십상이지요.
"점잖은 어른께서 괜히 쇤네 같은 걸 데리구 그러십니다……! 어서 돈장이나 주어 보냅사요! 헤……."
인력거꾼은 상하는 심정을 눅이고 종시 공순합니다. 그러나 그 돈장이란 말이 윤직원 영감한테는 저 히틀러라든지 하는 덕국 파락호(破落號)의 폭탄선언이라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말입니다.
"머어? 돈장……? 돈장이 무어당가? 대체……."
"일 환 한 장 말씀입죠! 헤……."
남은 기가 막혀서 하는 말을, 속없는 인력거꾼은 고지식하게 언해(諺解)를 달고 있습니다.
"헤헤, 나 참, 세상으 났다가 벨일 다아 보겄네……! 아―니 글씨, 안 받어두 졸드키 처분대루 허라던 사람이, 인제넌 마구 그냥 일 원을 달래여? 참 기가 맥히서 죽겠네…… 그만두소. 용천배기 콧구녕으서 마널씨를 뽑아 먹구 말지, 내가 칙살럽게 인력거 공짜루 타겄넝가……! 을매 받을랑가? 바른 대루 말허소!"
인력거꾼은 괜히 돈 몇십 전 더 얻어먹으려다가 짜장 얻어먹지도 못하고 다른 데 벌이까지 놓치지 싶어, 할 수 없이 오십 전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윤직원 영감은 여전합니다.
"아―니, 이 사람이 시방, 나허구 실갱이를 허자구 이러넝가? 권연시리 자꾸 쓸디띴넌 소리를 허구 있어……! 아, 이 사람아, 돈 오십 전이 뉘 애기 이름인 종 아넝가?"
"많이 여쭙잖습니다. 부민관서 예꺼정 모시구 왔는뎁쇼!"
"그러닝개 말이네. 고까짓것 엎어지먼 코 달 년의 디를 태다 주구서 오십 전씩이나 달라구 허닝개 말이여!"
"과하게 여쭙잖었습니다. 그리구 점잖은 어른께서 막걸릿값이나 나우 주서야 허잖겠사와요?"
윤직원 영감은 못 들은 체하고 모로 비스듬히 돌아서서 아까 풀렀다가 도로 비끄러맨 염낭끈을 다시 풀더니, 이윽고 십 전박이 두 푼을 꺼내 가지고 그것을 손톱으로 싸악싹 갓을 긁어 봅니다. 노상 사람이란 실수를 하지 말란 법이 없는 법이라, 좀 일은 되더라도 이렇게 다시 한번 손질을 해보면, 가사 십 전짜린 줄 알고 오십 전짜리를 잘못 꺼냈더라도, 톱날이 있고 없는 것으로 아주 적실하게 분별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니까요.
"옜네…… 꼭 십오 전만 줄 것이지만, 자네가 하두 그리싸닝개 이십 전을 주넝 것이니, 오 전을랑 자네 말대루 막걸리를 받어 먹든지, 탁배기를 사먹든지 맘대루 허소. 나넌 모르네!"
"건 너무 적습니다!"
"즉다니? 돈 이십 전이 즉담 말인가? 이 사람아 촌으 가먼 땅이 열 평이네, 땅이 열 평이여!"
인력거꾼은, 그렇거들랑 그거 이십 전 가지고 촌으로 가서 땅 열 평 사놓고서 삼대 사대 빌어먹으라고 쏘아던지고서 홱 돌아서고 싶은 것을, 그러나 겨우 참습니다.
"십 전 한 푼만 더 줍사요. 그리구 체두 퍽 무거우시구 허셨으니깐, 헤……."
"아―니, 이 사람이 인재넌 벨 트집을 다아 잡을라구 허네! 이 사람아, 그럴 티먼 나넌 이 큰 몸집으루 자네 그 쬐외깐헌 인력거 타니라구 더 욕을 부았다네. 자동차나 기차나, 몸 무겁다구 돈 더 받넌 디 부았넝가?"
"헤헤, 그렇지만……."
"어쩔 티여? 이것 받어 갈랑가? 안 받어 갈랑가? 안 받어 간다먼 나 이놈으루 괴기 사다가 야긋야긋 다져서 저녁 반찬이나 히여 먹을라네."
"거저 십 전 한 푼만 더 쓰시면 허실 걸 점잖어신 터에 그러십니다!"
"즘잔? 이 사람아, 그렇기 즘잖을라다가넌 논 팔어 먹겄네……! 에잉 그거 참! 그런 인력거꾼 두 번만 만났다가넌 마구 감수(減壽)허겄다……!"
이 말에 인력거꾼이 바른 대로 대답을 하자면, 그런 손님 두 번만 만났다가는 기절하겠다고 하겠지요.
윤직원 영감은 맸던 염낭끈을 또 도로 풀더니, 오 전박이 한 푼을 더 꺼냅니다. 이 오 전은 무단스레 더 주는 것이거니 생각하면 다시금 역정이 나고 돈이 아까웠지만, 인력거꾼이 부둥부둥 떼를 쓰는 데는 배겨 낼 수가 없다고, 진실로 단념을 한 것입니다.
"……거 참……! 옜네! 도통 이십오 전이네. 이제넌 자네가 내 허리띠에다가 목을 매달어두 쇠천 한푼 막무가낼세!"
인력거꾼은 윤직원 영감이 말도 다 하기 전에 딸그랑하는 대소 백통화 서 푼을 그 육중한 손바닥에다가 받아 쥐고는 고맙다고 하는지 무어라고 하는지 분명찮게 입 안의 소리로 두런거리면서, 놓았던 인력거 채장을 집어 들고 씽하니 가버립니다.
"에잉! 권연시리 그년의 디를 갔다가 그놈의 인력거꾼을 잘못 만나서 실갱이를 허구, 애맨 돈 오 전을 더 쓰구 히였구나! 고년 춘심이년이 방정맞게 와서넌 명창대횐(名唱大會)지 급살인지 헌다구, 쏘사악쏘삭허기 때미 그년의 디를 갔다가……."
윤직원 영감은 역정 끝에 춘심이더러 귀먹은 욕을 하던 것이나, 그렇지만 그건 애먼 탓입니다. 왜, 부민관의 명창대회를 무슨 춘심이가 가자고 해서 갔나요? 춘심이는 그저 부민관에서 명창대회를 하는데, 제 형 운심이도 연주에 나간다고 자랑삼아 재잘거리는 것을, 윤직원 영감 자기가 깜짝 반겨선, 되레 춘심이더러 가자가자 해서 꾀어 가지고 갔으면서…….
사실 말이지, 춘심이가 그런 귀띔을 안 해주었으면 윤직원 영감은 오늘 명창대회는 영영 못 가고 말았을 것이고, 그래서 다음날이라도 그걸 알았으면 냅다 발을 굴렀을 것입니다.
제2장. 무임승차 기술
윤직원 영감은 명창대회를 무척 좋아합니다. 아마 이 세상에 돈만 빼놓고는 둘째 가게 그 명창대회란 것을 좋아할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본이 전라도 태생인 관계도 있겠지만, 그는 워낙 남도 소리며 음률 같은 것을 이만저만찮게 좋아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깐으로는, 일년 삼백예순날을 밤낮으로라도 기생이며 광대며를 사랑으로 불러다가 듣고 놀고 하고는 싶지만, 그렇게 하자면 일왈 돈이 여간만 많이 드나요!
아마 연일을 붙박이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어느 권번이나 조선음악연구회 같은 데 교섭을 해서 특별할인을 한다더라도 하루에 소불하 십 원쯤은 쳐주어야 할 테니, 하루에 십 원이면 한 달이면 삼백 원이라, 그리고 일년이면 삼천…… 아유! 그건 윤직원 영감으로 앉아서는 도무지 생각할 수도 없게시리 큰 돈입니다. 천문학적 숫자란 건 아마 이런 경우에 써야 할 문잘걸요.
한즉, 도저히 그건 아주 생심도 못 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거야말로 사람 살 곳은 골골마다 있다든지, 윤직원 영감의 그다지도 뜻 두고 이루지 못하는 대원을 적이나마 풀어 주는 게 있으니, 라디오와 명창대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완(李浣) 이대장으로 치면 군산(群山)을 죄꼼은 깎고, 계수를 몇 가지 벤 만큼이나 하다 할는지요. 윤직원 영감은 그래서 바로 머리맡 연상(硯床) 위에 삼구(三球)짜리 라디오 한 세트를 매두고, 그걸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방송국의 마이크를 통해 오는 남도 소리며 음률 가사 같은 것을 듣고는 합니다.
장죽을 기다랗게 물고는 보료 위에 편안히 드러누워 좋다! 소리를 연해 쳐가면서 즐거운 그 음악 소리를 듣노라면, 고년들의 이쁘게 생긴 얼굴이나 광대들의 거동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유감은 유감이지만, 그래도 좋기야 참 좋습니다.
라디오를 프로그램대로 음악을 조종하는 소임은 윤직원 영감의 차인 겸 비서 겸 무엇 겸 직함이 수두룩한 대복(大福)이가 맡아 합니다.
혹시 남도 소리나 음률 가사 같은 것이 없는 날일라치면 대복이가 생으로 벼락을 맞아야 합니다.
"게, 밥은 남같이 하루에 시 그릇썩 먹으먼서, 그래, 어떻기 사람이 멍청허먼, 날마당 나오던 소리를 느닷띴이 못 나오게 헌담 말잉가?"
이러한 무정지책에 대복이는 유구무언, 머리만 긁적긁적합니다. 하기야 대복이도 처음 몇 번은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그렇게 정했으니까, 집에 앉아서야 라디오를 아무리 주물러도 남도 소리는 나오지 않는 법이라고 변명을 했더랍니다.
한다 치면, 윤직원 영감은 더럭,
"법이라니께? 그런 개× 같은 놈의 법이 어딨당가……? 권연시리 시방 멍청허다구 그러닝개, 그 말은 그리두 고까워서 남한티다가 둘러씨니라구……? 글씨 어떤 놈의 소리가 금방 엊저녁까지 들리던 소리가 오널사 말구 시급스럽게 안 들리넝고? 지상(기생)이랑 재인광대가 다아 급살맞어 죽었다덩가?"
이렇게 반찬 먹은 고양이 잡도리하듯 지청구를 하니, 실로 죽어나는 건 대복입니다.
방송국에서 한동안, 꼭 같은 글씨로, 남도 소리를 매일 빼지 말고 방송해 달라는 투서를 수십 장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게 뉘 짓인고 하니, 대복이가 윤직원네 영감한테 지청구를 먹고는 홧김에 써보고, 핀잔을 듣고는 폭폭하여 써보내고 하던, 그야말로 눈물의 투서였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의 불평은 그러나 비단 그뿐이 아닙니다. 소리를 기왕 할 테거든 두어 시간이고 서너 시간이고 붙박이로 하지를 않고서, 고까짓 것 삼십 분, 눈 깜짝할 새 감질만 내다가 그만둔다고, 그래서 또 성퇓니다.
물론 투정이요, 실상인즉 혼자 속으로는, 그놈의 것 돈 십칠 원 들여서 사놓고 한 달에 일 원씩 내면서 그 재미를 다 보니, 미상불 헐키는 헐타고 은근히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또 막상 청취료 일 원야라를 현금으로 내주는 마당에 당해서는 라디오에 대한 불평 겸 돈 일 원이 못내 아까워서,
"그까짓 놈의 것이 무엇이라구 다달이 돈을 일 원씩이나 또박또박 받어 간다냐?"
"그럴 티거든 새달버텀은 그만두래라!"
이렇게 끙짜를 하기를 마지않습니다.
라디오는 그리하여 아무튼 그러하고, 그 다음이 명창대횝니다.
기생이며 광대가 가지각색이요, 그래서 노래도 여러 가지려니와 직접 눈으로 보면서 오래오래 들을 수가 있기 때문에, 감질나는 라디오보다는 그것이 늘 있는 게 아니어서 흠은 흠이지만, 그때그때만은 퍽 생광스럽습니다. 딱히 윤직원 영감의 소원 같아서는, 그런즉슨 명창대회를 일년 두고 삼백예순날 날마다 했으면 좋을 판입니다.
이렇듯 천하에 달가운 명창대횐지라, 서울 장안에서 언제고 명창대회를 하게 되면 윤직원 영감은 세상없어도 참례를 합니다. 만일 어느 명창대회에 윤직원 영감이 참례를 못 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대복이의 태만입니다.
대복이는 멀리 타관에를 심부름 가고 있지 않는 이상 매일같이 골목 밖 이발소에 나가서 라디오의 프로그램과 명창대회나 조선음악연구회 주최의 공연이 있는지를 신문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대복이가 만일 실수를 해서 윤직원 영감한테 그것을 알으켜 드리지 못한 결과, 혹시 한 번이라도 그 끔직한 굿(구경)에 참례를 못 하고서 궐을 했다는 사실을 윤직원 영감이 추후라도 알게 되는 날이면, 그때에는 대복이가 집안 가용을 지출하는 데 있어서(가령 두 모만 사야 할 두부를 세 모를 사기 때문에) 돈을 오 전 가량 요외로 더 지출했을 때만큼이나 벼락 같은 꾸중을 듣게 됩니다.
아무튼 그만큼이나 좋아하는 명창대회요, 그래 오늘만 하더라도 낮에는 한시부터 시작을 한다는 걸 윤직원 영감이 춘심이를 앞세우고 댁에서 나선 것이 열한시 반이 채 못 되어섭니다.
"글쎄 이렇게 일찍 가서 무얼 해요? 구경터에 일찍 가서 우두커니 앉었는 것두 꼴불견인데……."
앞서 가던 춘심이가 일껏 잘 가다가 말고 히뜩 돌아서더니, 한참 까부느라고 이렇게 쫑알거리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허―연 수염을 한번 쓰다듬으면서 헤벌쭉 웃습니다.
"저년이 또 초란이치름 까분다……! 그러지 말구, 어서 가자, 가아!"
윤직원 영감이 살살 달래니까 춘심이는 다시 돌아서서 아장아장 걸어갑니다.
아이가 얼굴이 남방 태생답잖게 갸로옴한 게, 또 토끼화상이 아니라도 두 눈은 또렷, 코는 오똑, 입술은 오뭇, 다 이렇게 생겨 놔서 대단히 야무집니다. 그렇게 야무지게 생긴 제값을 하느라고 아이가 착실히 좀 까불구요.
나이가 아직 열다섯 살이라, 얼굴이 피지는 않았어도 보고 듣는 게 그런 탓으로, 몸매하며 제법 계집애 꼴이 박였습니다.
머리를 늘쩡늘쩡 땋아 내려 자주 댕기를 드린 머리채가 방둥이에서 유난히 치렁치렁합니다. 그러나 이 머리는 알고 보면 중동을 몽땅 자른 단발머리에다가 다래를 드린 거랍니다.
앞머리는 좀 자르기도 하고 지져서 오그려 붙이기도 하고 군데군데 핀을 꽂았습니다.
빨아서 분홍물을 들인 흘게 빠진 생수 깨끼적삼에, 얼숭덜숭한 주릿대 치마를 휘걷어 넥타이로 질끈 동인 게 또한 제격입니다.
살결보다는 버짐이 더 많이 피고, 배내털이 숭얼숭얼해서 분을 발랐다는 게 고루 먹지를 않고 어루러기가 진 것 같습니다.
이만하면 어디다가 내놓아도, 대광교 천변가로 숱해 많이 지나다니는 그런 모습의 동기(童妓)지, 갈데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깔보지는 마십시오. 그래 보여도 그 애가 요새 그 연애를 한답니다.)
춘심이는 윤직원 영감이 달래는 대로 한동안 앞을 서서 찰래찰래 가고 있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또 해뜩 돌려다보면서,
"영감님!"
하고 뱅글뱅글 웃습니다. 이 애는 잠시라도 까불지 못하면 정말 좀이 쑤십니다.
"무어라구 또 촐랑거리구 싶어서 그러냐?"
